음악과 신앙 : 야만과 미신에 대한 모호성
세상에는 듣지 말아야 할 소리들이 너무 많다.
귀를 막아야 살 수 있다. 혹시 교회의 소리도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되고 만 것은 아닐까!
예술은 야만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듯이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신앙도 미신을 부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지 잘 살펴볼 일이다.
예술, 특히 음악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영화 <피아니스트>(2002)를 보고 난 후이다. 이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Władysław Szpilman)의 저서를 바탕으로 제작한 홀로코스트 영화이다. 주인공 슈필만(에이드리언 브로디 분)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은신하던 폐허의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어렵게 찾은 통조림을 따려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영화의 화면은 통조림에서 새어 나오는 내용물을 비춘다. 이어서 서서히 옮겨가는 카메라에 독일군의 군화가 잡힌다. 한 독일군 장교가 거기에 있었다. 꼼짝없이 붙잡혀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장교가 고약한 성미라면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몰랐다. 장교는 스필만에게 직업을 묻는다.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하자 장교는 피아노가 있는 옆방으로 안내하고 연주해보라고 한다. 스필만은 바닥에서 통조림을 주워들고 피아노 방에 들어선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아노를 쳐보라는 장교의 말은 한 가닥 희망이 되었던 것일까? 스필만은 통조림을 피아노 위에 올려두고 연주를 시작한다. 수년간 연주해본 적이 없는 그의 손은 동상으로 굽어있었다. 이윽고 폐허가 된 전쟁터에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교는 먹을 것과 더불어 스필만에게 다가올 구원의 소식을 전한다. 예술은 죽음마저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유럽 각 도시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1886~1954)를 ‘죽음의 전령사’로 불렀다. 나치는 쳐들어갈 나라에 군대보다 먼저 음악을 보냈던 것이다. 유태인 수용소에는 가스실행을 암시하는 연주회가 반복되어 유태인의 비명을 자아냈고, 가스실에는 늘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었다. 음악은 절망과 공포였고, 증오와 강요였다고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지휘자 시몬 락스가 『다른 세상의 음악』(1948)에서 고발한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알랭 코르노 감독, 1991)으로 유명한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 )는 악기의 기원인 현악기 ‘리라’가 전쟁무기인 활과 연관 있다고 말한다(『음악혐오』, 김유진 역, 프란츠, 2017 참조). 활이 멀리서 오는 죽음이듯 음악은 죽음을 부르는 소리라는 말, 눈에는 눈꺼풀이 있어 보기 싫을 때 감으면 그만이지만 귀는 막을 것이 없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야만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배를 타고 귀향하는 오디세우스는 세이레네스의 유혹을 극복하려고 선원들의 귀를 밀납으로 막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는다. 세상에는 듣지 말아야 할 소리들이 너무 많다. 귀를 막아야 살 수 있다. 혹시 교회의 소리도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되고 만 것은 아닐까! 예술은 야만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듯이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신앙도 미신을 부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지 잘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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