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6월 중순에 북산 백홍준의 길을 다녀왔다. 오늘날처럼 교회에 본질을 잃은 현상이 난무할 때 이 땅의 최초 세례교인으로서 하나님으로 우리 말을 하시게 할 뿐 아니라 온몸으로 복음의 삶을 산 북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 여겨 조규삼 목사(행복한교회)를 대장으로 모두 18명이 이 길을 다녀왔다. 이 길을 다녀온 우리는 길에서 얻은 감동과 각오를 교단의 동역자들과 나누고자 교단 신문에 사진을 곁들여 연재하기로 하였다. 이를 허락하여준 한국교회신보에 감사를 표한다.
우리의 첫 여정은 청나라의 태생지인 심양이었다. 청은 만주족 누루하치가 세운 나라이다. 당시 명나라를 받들던 조선은 청의 사대 요구를 거절하였다. 청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병자호란(1636)을 일으켰고 결국 조선의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다. 
심양의 고궁은 북경의 자금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상당한 규모와 조직력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고궁 앞길을 걸어 무근문(撫近門)을 향했다. 대동문이라고도 불리는 이 문 동편에는 만주어로 쓰인 현판이 있지만 만주어는 죽은 언어가 된 지 오래다. 강하고 거대한 나라를 세우고도 글을 잃어버린 민족의 비애를 느낀다. 
그에 비하여 무근문 밖의 한 교회에서 북산과 그의 벗들이 스코틀랜드자유연합교회 선교사들과 함께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하고 출판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사실이 교회 역사에서 괄호 취급을 받는 것에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우리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원년을 적어도 1879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북산을 비롯한 4명의 조선인들이 세례를 받은 해이며 이미 우리글 성경 번역이 상당히 진척되어 출판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나라를 세우고도 글을 잃어버린 만주족에 비하여 얼마나 위대한가! 당시 조선은 오백여 년 동안 유교 이데올로기에 의한 차별과 절망, 그리고 서구 열강과 주변 나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와중에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이 절대절명의 시기에 복음을 통해 구원과 민족의 희망을 발견한 북산과 그의 벗들은 우리 글 성경 번역에 몸을 바쳤고, 출판한 후에는 그것을 국내에 들여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으니 말이다. 이런 믿음의 선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교회의 자랑이라고 한다고 주님은 우리를 자고하다고 나무라실까! 
<북산을 따라 걷다>는 1884년 매클레이 선교사와 알렌의 입국, 또는 1885년 부활절에 제물포에 도착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선교역사와 결을 달리하는 한국교회 역사의 또 다른 안목이다. 미국 선교사가 이 땅을 밟기 전에 우리의 선배 신앙인들에 의한 복음의 강한 꿈틀거림이 이미 있었고, 그것이 믿음의 굴기가 되어 한반도 백성을 구원하기 시작하였고 어두운 민족의 희망이 되었다. 그 복음이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은총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길을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140여 년 전 인물인 북산에게서 이 시대의 안내표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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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인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