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꽃'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21.12.17 책 이야기
  2. 2021.12.17 클래식에서 이동파까지
  3. 2021.12.17 그리스에서 바로크까지
  4. 2019.07.24 ‘영웅 이순신’을 반대한다
  5. 2019.03.08 두 얼굴의 침묵

책 이야기

2021. 12. 17. 19:10 from 이야기꽃

<그리스에서 바로크까지>, <클래식에서 바로크까지> 북 컨서트를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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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야로센코 <삶은 어디에나> 1888, 캔버스에 유채, 테라고프 미술관, 모스크바

 

 

야로센코의 그림 가운데 <삶은 어디에나>1888가 있다. 장교이기도 하였던 야로센코는 이동파 운동에 앞장선 화가다. 그의 작품은 급격한 사회성을 띄고 있다. 축축해 보이는 초록색 화물열차 안에는 차르에게 반대했다는 이유로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정치범들이 갇혀 있다. 열차 내부는 낙심과 좌절의 어둠이 깊다. 그런데 열차에는 어린 아기를 포함한 가족도 있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자녀를 강제로 떼어놓는 21세기 미국보다 19세기 말의 러시아가 차라리 낫다. 잠깐 간이역에 서 있기는 하지만 고난의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자유를 상징하는 새가 찾아오고 행복을 의미하는 볕이 든다. 엄마에게 안긴 아기는 제 몫의 빵을 새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화가는 ‘혁명가의 피는 이렇게 따뜻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상 구원을 위하여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은 팔을 걷었다. 미술가들도 그 대열에 함께 하였다. 부자들은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거룩한 낭비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늘 한국의 사회는 그때 그들과 너무 다르다. 우리의 부자들은 제 주머니에 채우기에 여념이 없고, 종교인들은 자기 구원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 역사의 도래를 막고 싶은 것일까?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그들이 난민보다 더 측은하다.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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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보다 재미있고 역사보다 진지하고 철학보다 깊습니다. 화가는 단순한 흉내장이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거짓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마음을 읽어내어 무채색 삶에 색을 입히고, 건조한 신앙에 기름칠을 하고 싶었습니다. 끄적거렸던 이런 낙서가 한 권의 책으로 둔갑하는 과정에는 하늘교회 교우들의 인내(?)와 <구멍가게> 벗들의 호응이 있었습니다. 선뜻 책의 출판을 맡아준 사장님, 무턱대고 추천서를 쓰겠다고 약속하고 후회(?)하셨을 두 분 선생님(ㅋㅋ), 내용도 보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바보(?) 친구들 덕분입니다. 고마운 분들의 사랑을 입고 이 책은 태어났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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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와 춘원 이광수.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결은 달랐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극복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장군이다. 일본에 의해 나라가 유린당할 때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소설이 두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하나는 단재 신채호가 1908년 6월 11일부터 10월 23일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조선 제1위인 이순신 전〉이고, 또 하나는 춘원 이광수가 1931년 6월 26일부터 1932년 4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이순신〉이다. 그런데 신채호의 글은 일제에 의해 판금 조처가 되었고, 이광수가 쓴 〈이순신〉은 일제 치하에서도 연재되었다. 문제는 이광수의 〈이순신〉이 어떻게 일본식 변성명과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화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연재될 수 있었을까?

신채호의 ‘이순신’은 이순신의 인품과 지혜를 밝히면서 힘을 합해 싸운 장졸과 백성을 모두 소중하게 서술했다. 그러나 이광수의 ‘이순신’은 ‘이순신’만 미화하였을 뿐 당시 관료들과 백성들을 형편없게 표현하였다. 이광수에 의하면 임금은 귀가 얇고 우유부단하며, 심지가 굳지 못한 덜떨어진 군주이며, 신하들과 관리들은 매일 당쟁만 일삼고 소일하며 제 배만 부르면 만사태평인 전형적인 탐관오리이며 백성들은 무지렁이에 불과하였다. 오직 조선에 용감한 장수, 부하들의 지지를 받는 장군은 이순신뿐이었다. 게다가 일본 장수들은 한결같이 민첩하고 용감하게 그리고 있다.

 

파주 목사 허진은 왕에게 저녁밥 못드린 죄를 두려워하여 도망하고 상감이 잡숫기도 전에 먼저 다 먹어버린 호위 군사들은 먹고 나서야 죄 지은 줄을 알고 에라 빌어먹을 것 따라가면 별 수가 있느냐, 경칠 것밖에 남은 것이 있느냐 하고 밤 동안에 다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이순신』, 우신사, 137면)

 

“잘들 호강했지. 저희들이 우리 위해 한 일이 무에야? 저희들이 생전에 누구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해 보았던가? (중략) 백성들의 등을 긁고 나라를 망해 놓은 것밖에 한 일이 무에냐 말야. 무슨 낯에 누구더라 오라 가라…”(137면)

 

한 사람도 능히 적병과 겨눈 사람이 없었다. 진실로 못난 백성이었다.(188면)

 

“팔도강산에 살아있는 이, 순신 하나뿐이었다. 강산이 오직 그 하나를 믿은 것이다. (중략) 전국의 힘이 다 무너지고 왕과 그의 신하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여 오직 다른 나라(명나라)에 백배 천배로 구원을 애걸하고 있을 때에 아랫녘 한 구석의 미관말직을 가진 일개 수사 이순신이 홀로 삼천리 조국을 두 어깨에 메고 조정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는 싸움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189면)

 

이광수는 이순신의 아들 면이 일본군의 대장과 직면한 장면도 소개하는데 여기에서 일본군 대장은 적이기도 한 면을 배려하는 매우 상식적이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내가 너의 가족을 죽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장이 보호하라기에 오는 것이다. 만일 더 저항하면 너도 죽여 버리고 네 가족도 죽이려니와 네가 항복만 하면 너도 살리고 네 가족도 해치지 아니하고 데려다가 편안히 살게 할 것이다.”(357면)

 

“네가 갑옷 투구를 아니 입었으니 나도 갑옷과 투구를 벗을 테다.”(358면)

 

일제는 ‘영웅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백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일제는 단재의 ‘이순신’은 죽이고 춘원의 ‘이순신’은 살린 것이다. 생각 없이 이광수의 〈이순신〉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조선민족에 대한 열등감과 일본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순신을 이광수식으로 읽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기회만 생기면 일본 찬양에 목소리를 돋우고 우리 스스로는 깍아 내린다. 답답하고 슬픈 일이다.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밀고해야만 매국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 자긍심이 없으면 누구나 매국노가 될 수 있다. 


<
201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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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침묵

2019. 3. 8. 09:33 from 이야기꽃


인간은 이다지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 파랗습니다.” 나가사키 근처 소토메(外海)라는 바다가 작은 마을에 있는 엔도 슈사쿠 문학관 침묵의 비에 있는 침묵의 명문장입니다. 페레이라는 내가 배교한 것은 말야 하나님이 무엇 하나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며 로드리고에게 변명하듯 말합니다. 로드리고는 주여, 지금이야말로 당신은 침묵을 깨 버리셔야 합니다. 더 이상 침묵하셔서는 안 됩니다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십니다.





역사의 아들, 엘리 비젤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이다.”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일해 온 엘리 비젤(Elie Wiesel, 1928~2016)의 말입니다. 그는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15살에 가족과 함께 유대인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의 왼팔에는 ‘A-7713’이라는 번호가 새겨졌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스실에서 처형되었고 아버지도 해방직전에 숨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비젤은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공부하고 프랑스 월간지 라 르슈의 기자로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젤은 과거의 아픈 경험을 숨긴 채 히키코모리 증세를 보이며 세상과 역사로부터 단절한 삶을 살고자하였습니다. 이때 비젤에게 도전을 준 이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Francois Moriac, 1885-1970)입니다. 모리악은 비젤의 아픈 경험을 되살려 글 쓸 것을 권하였습니다. 슬프게 죽어간 동료에 대한 기억의 재생이 인류사에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설득한 것입니다. 마침내 비젤은 수용소의 경험을 바탕으로(1958)을 출판하였습니다.

1963년에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1)이 주창한 시오니즘을 지지하며 소비에트의 유대인을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니카라과의 소수 부족과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에서 행방불명된 이들, 캄보디아의 난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피해자들, 쿠르드족,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희생자들을 위해 발언하는 현실참여 지식인으로서 차별과 불관용과 불의와 맞섰습니다. 이런 인류애의 활동이 인정되어 엘리 비젤은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신생국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다보니 그 상대편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슬픔을 외면한 것은 그가 갖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아들입니다.

 

교수대에 달리신 하나님

은 홀로고스트(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인 저자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이 책에는 피펠이라는 어린 소년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펠은 수용소의 키 크고 마음씨 너그러운 네덜란드 카포(Kapo, 수용소에서 죄수를 감시 감독하는 다른 죄수)의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카포는 수용소의 중앙발전소에 고장을 일으켜 사보타주2)하였다가 발각되었습니다. 그의 방에서 많은 무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카포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협력자의 이름을 대지 않은 채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게슈타포는 피펠을 체포하여 고문하였습니다. 하지만 피펠도 이름을 불지 않았습니다. 나치는 무기를 소지하다 발각된 두 명의 유대인과 피펠에게 교수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사형수들은 수천 명의 수용소 포로들이 보는 가운데에 세 개의 교수대에 놓은 의자 위로 올라갔습니다. 곧 그들의 목에 올가미가 걸렸습니다. 두 사람은 자유 만세를 외쳤지만 피펠은 침묵했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자비로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이윽고 신호가 떨어지자 세 개의 의자가 넘어졌습니다. 물을 끼얹은 듯 수용소 안에는 낮은 흐느낌이 가득했습니다. 두 명의 어른은 잠시 후 숨이 끊어졌지만 피펠의 가벼운 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흔들렸습니다. 나치는 포로들로 하여금 희생자 앞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비젤이 소년 앞을 지날 때까지 소년은 살아있었습니다. 그 고통의 현장을 지날 때 아까의 그 사람이 다시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그때 비젤의 안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있지.”

 

하나님은 언제 침묵을 깨실까요?

일본 에도(江戶)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가 세이다이쇼군(征夷大將軍)이 되어 강호(江戶, 오늘의 토쿄)에 막부를 연 1603년부터 1867년 타이세이호칸(大政奉還), 즉 메이지(明治)유신까지의 265년을 말합니다. 에도시대 이전의 일본에는 기독교가 허용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는 십자가기를 들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소설 침묵(1966)은 에도시대 초기,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17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3) 포르투갈 출신의 강직한 선교사 로드리고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스승 페레이라의 배교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잠입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페레이라는 30여 년 동안 일본선교에 헌신한 지도자였던 만큼 그의 배교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나가사키 앞 소토섬에 잠입한 로드리고는 키리스탄들이 잔인하게 처형되는 것을 보며 기적을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였습니다. 결국 그도 관원들에게 붙잡혀서 배교를 강요받습니다. 배교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려진 후미에(踏繪)를 밟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얼굴만 바라보고 살아온 로드리고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요구였습니다. 관원들의 겁박은 집요하였습니다. 그가 후미에를 밟으면 잡혀온 키리스탄들을 살려주겠지만, 거절한다면 그들을 모두 처형하겠다는 것입니다. 배교한 스승 페레이라의 변명과 권유도 있었습니다. 로드리고는 그리스도 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일본 땅에 왔지만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교인들을 보며 이토록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후미에를 밟아 교인들을 살리는 것이 옳은지,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 고뇌합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로드리고는 결국 후미에를 밟기로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 자기 생명보다 귀중히 여겨오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밟아야 했습니다. 무거운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때 동판에 새겨진 분이 말합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4)

엘리 비젤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잊는 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엔도 슈사꾸는 인간은 이다지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 파랗습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나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나 커서 예수님을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기도하려 해도 혀가 움직이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부재'는 제 일생에 가장 부끄러운 비밀입니다고 했습니다. 당신에게 침묵은 어떤 의미입니까? 구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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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인 헤르츨은 파리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드레퓌스사건을 겪으며 유대인에게도 조국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생겼다. 헤르츨은 드레퓌스사건을 통해 오랜 세월 세속에 융화되어 정체성을 잃어가던 유대인을 깨우기 위해 유대인 국가(1896)오래 된 새로운 땅(1903)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보지 못하였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다비드 벤구리온, 하임 바이츠만과 함께 국부로 추앙받는다. 헤르츨이 없었다면 시오니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국립묘지를 헤르츨산이라고 부른다.

2) 사보타주(sabotage)는 적이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또는 노동쟁의의 한 과정으로서 장비, 시설, 기계 등을 고의로 파괴하는 행위를 말한다.

3) 당시 최고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독교의 만인평등 사상이 일본의 봉건제에 반하고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가 기존 종교와의 대립한다는 점 등을 들어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4) 엔도 슈사쿠, 침묵, 홍성사, 2003,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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