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보다 재미있고 역사보다 진지하고 철학보다 깊습니다. 화가는 단순한 흉내장이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거짓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마음을 읽어내어 무채색 삶에 색을 입히고, 건조한 신앙에 기름칠을 하고 싶었습니다. 끄적거렸던 이런 낙서가 한 권의 책으로 둔갑하는 과정에는 하늘교회 교우들의 인내(?)와 <구멍가게> 벗들의 호응이 있었습니다. 선뜻 책의 출판을 맡아준 사장님, 무턱대고 추천서를 쓰겠다고 약속하고 후회(?)하셨을 두 분 선생님(ㅋㅋ), 내용도 보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바보(?) 친구들 덕분입니다. 고마운 분들의 사랑을 입고 이 책은 태어났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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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죽음

2020. 1. 28. 18:36 from 카테고리 없음

<마라의 죽음>, 1793, 캔버스에 유채, 128x165cm, 벨기에왕립미술관, 브뤼셀

 

 

프랑스 대혁명은 인구의 98%에 해당하는 평민계층인 제3신분이 주도한 시민혁명이다. 이 중에는 의사와 변호사 등 계몽주의 사상을 신봉하고 전문지식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제1신분(고위 사제)과 제2신분(귀족)을 제치고 혁명사회를 주도하길 원했다. 그들은 1789년 12월 귀족들의 반혁명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코뱅수도원을 근거지로 세력화를 꾀하였는데 이를 자코뱅파(Club des Jacobins)라고 한다. 이 무렵 루이 16세가 외국으로 도주하다가 체포되었다. 자코뱅당에서 활동하던 이들 가운데에 왕권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는 귀족들과 우파 부르주아들이 루이 16세의 도주사건을 계기로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온건파를 형성되었는데 이들을 푀양파(Club des Feuillants)라 한다. 푀양파는 입헌의회에서 자코뱅파와 격돌하며 왕실을 보호하려 하였으나 반혁명의 왕당파로 간주되어 혁명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자코뱅당 안에는 서로 대비되는 정치파벌이 있었다. 하나는 소시민과 상퀼로트(Sans Culotte, 반바지를 입지 않은 사람으로 귀족과 구별되는 노동자계층을 말한다)를 기반으로 하는 급진적인 몽테뉴파(La Montagne)였는데 이 정파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주도하였고 독재체제를 수립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다른 하나는 상공업 시민과 개신교, 온건 공화파의 지롱드파(Girondins)인데 이들은 공포정치가 진행되는 과정에 숙청되면서 세력이 위축되었다. 루이 16세 처형 이후 자코뱅당의 혁명정부는 국내외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였다. 유럽 왕실들은 프랑스를 군사적으로 압박했고 국내에서는 재정위기와 기근과 내전 위협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혁명수호를 위해 공포정치를 펼쳤다. 혁명재판소를 통해 반역 의혹자들을 단두대에 처형하였다.

 

프랑스의 혁명기는 예측할 수 없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프랑스 대혁명을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장 폴 마리(Jean Paul Marat, 1743~1793)가 있다. 그는 런던과 파리에서 의사로 일했다. 절대주의를 비판하는 『노예제도의 사슬』(1774)을 썼다. 프랑스 대혁명(1789)이 일어나자 〈인민의 벗〉이라는 신문을 창간하였다. 반혁명 음모자 200명의 이름을 자신의 신문에 게재하기도 하였다. 그는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1794)과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1794)과 함께 자코뱅당의 핵심 인물이었다. 자코뱅당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무상분배했고, 유럽 최초로 노예제 폐지를 결의하였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코뱅당을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라고 하였고, ‘좌익’이라는 개념도 이때 등장하였다. 마라는 평소에도 ‘프랑스의 미래를 방해하는 인민의 적은 10만 명이라도 처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과격한 정치인이었다. 공안위원회, 보안위원회, 혁명재판소 등을 설치해 반대파를 숙청하였다. 특히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지속되면서 <프랑스 인권선언>(1789)은 휴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항상 마라가 있었다. 그에게 혁명이란 ‘죽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달아 죽였고 나중에는 죽여놓고 이유를 달았다.

 

그런 마라가 암살당했다. 범인은 지롱드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밝힌 샤를로트 코르데(Charlotte Corday,1768~1793)였다. 체포 당시 그의 옷에는 ‘마라는 프랑스인의 피로 살찌고 있는 야만스러운 짐승이다’는 쪽지가 있었다. 그녀는 마라를 탐욕스러운 권력자로 보았고 시민이 이룬 혁명을 시민에게 돌려주지 않는 권력에 응징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공범을 묻는 심문에 침묵으로 일관한 그녀는 “나는 10만 명의 프랑스인을 살리려고 마라를 살해했다”는 말을 남긴 채 마라 암살 나흘 뒤인 1793년 7월 17일 단두대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정치성향이 강한 화가로 알려진 자크 루이 다비드는 혁명정부를 지지했다. 마라가 죽은 다음 날 다비드는 장례위원에 선정되어 마라의 암살을 그려 후세에 남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을 편안하고 숭고하게 표현하였다. 마라가 숨지기 직전에 “1793년 7월 13일. 마리 안나 샤를로트가 시민 마라에게. 나는 충분히 비참합니다. 때문에 당신의 자비가 필요합니다.”는 편지를 읽고 노란 나무 탁자 위의 종이에 직접 “이 5프랑 지폐를 다섯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해주게. 그녀의 남편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네”라고 쓰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마라가 그런 편지를 쓰지는 않았다. 암살당한 마라를 혁명 정국에서 부활시키려는 다비드의 의도에서 불순함을 느낀다. 게다가 나무 탁자에는 “마라에게 다비드가 헌정한다”까지 써 두어 화가의 정치성향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코뱅당의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혁명 주도권은 지롱드파가 잡았으나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에 의해 독재권력이 등장하여 결국 프랑스 제1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물론 다비드는 그런 와중에도 나폴레옹에게 중용되어 미술계 최대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전성기를 누린다. 교황권보다 우월한 왕권을 묘사한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통해 그의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에는 브뤼셀로 망명하여 다시는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비열한 인물’(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죽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이다. 죽음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오늘도 여전히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그때 그 권력은 모습만 달리한 채 여전히 죽음과 가까이에 있다. 그때는 정치가 죽음을 부추겼고 지금은 기업이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지난 11월 13일 태국인 노동자 자이분 프레용씨가 건축현장 폐기물을 분류 처리하는 곳에서 일하다가 김용균 씨가 그랬던 것처럼 기계에 빨려들어 갔다. 마라의 죽음을 미화한 다비드가 프레용의 죽음을 그린다면 과연 어떻게 그릴까 궁금하다. 

하늘지기 201952

 

 

#마라의죽음 #자코뱅당 #다비드 #샤를로트코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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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2020. 1. 10. 10:45 from 카테고리 없음

미국과 이란의 전쟁 위기 국면이 잘 넘어가서 다행입니다 2020.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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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꽃이 지는 슬픔

2019. 11. 29. 23:27 from 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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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언론

2019. 10. 16. 23:54 from 카테고리 없음

 

2019. 10. 17에 개봉하는 일본영화. 심은경이 주인공을 맡았다. 

 

한때는 '언론자유'가 정의의 구호였다.

언론이 자유를 찾으면 좋은 세상이 올줄 알았다.

그런 언론이 이제는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가 되었고

권력집단과 짝하여 진실을 모독하고있다.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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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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